[인지청구 후기] 사실조회와 문서제출명령으로 '아버지'를 특정하다 (4)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특정하고 인정사항 알아내기
사실조회 신청
지난 글에서 어머니의 사실확인서를 받아,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상대로 소장을 냈다.
아는 거라곤 이름과 옛날에 직업군인이었다는 것뿐.
이번 글은 그 단서만 들고 법원을 통해 아버지를 찾아 나선 이야기다.

소장에는 상대방(피고)의 주소를 적는 칸이 있다.
나는 아버지 이름밖에 몰랐으니, 그 칸에는 '주소불명'이라고 적었다.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상대방 주소를 몰라도 소장은 낼 수 있었다.
소장 접수부터 인적사항 특정까지의 대략적인 절차는 아래와 같다.
- 소장과 사실조회 신청서를 함께 제출
- 판사님이 사실조회 신청을 승인
- 법원이 기관에 조회서를 보냄
- 기관이 법원에 회신
사실조회란 법원이 기관에 대신 물어봐 주는 절차다.
내가 물으면 개인정보라서 안 알려 주는 것도, "판사님이 허락해주셨어요"라고 하면 알려준다는 뜻이다.
소장을 내고 닷새 뒤, 변호사님한테서 카톡이 왔다.
"대표님, 저희 사실조회신청한 것 채택되어서, 조회서가 어제 발송되었습니다."
"네 잘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회서는 국방부부터 OO지방 병무청.. OO군 사단.. 등 군 관련 기관 여러 곳으로 나갔다.
어디에 기록이 남아 있을지 모르니, 관련 있을 만한 곳에는 일단 다 보내 봐야 한다는 게 변호사님의 전략이신듯 했다.

첫 회신 메일
2주쯤 지나 사실조회를 요청한 여러 기관으로부터 기다리던 회신이 왔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회신 메일을 열었다.
메일의 본문을 읽기도 전에 첨부파일부터 확인했다. 원래 이런 업무 요청의 답은 'PDF' 공문에 다 적혀있을테니까.
공문에 적혀있는 내용은 엄청 심플했다.
3초정도면 이 회신이 긍정적인이 부정적인지를 단번에 알아 차릴 수 있을 정도의 텍스트 분량이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확인불가" 였다.
다음 기관의 메일도 오픈했다. 첨부파일을 열었다.
"조건에 만족하는 기록 없음"
"개인정보 확인이 안됨"

솔직히 절망적이었다.
처음에는 개인정보에 예민한 시대니까, 어렵겠지 싶다가도..
그래도 무려 법원이, 판사님이 승인해서 공식으로 요청하는건데 뭐라도 주지는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가 무너지고, 어머니의 30년전 기억은 정말 맞을까?
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머니한테 직업군인이라고 뻥치고 (?) 만난건 아니였을까?
어머니는 나에게 '그 사람 만나러' 군대에 면회도 여러번 다녀왔고,
그 사람의 상급자와도 함께 식사까지 여러번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동생 (외삼촌)도 그 사람을 만나본적이 있어서, 직업군인인건 확실했다고 했다.
아무튼 머릿속에 잡생각이 가득해졌다.
다행히 아직 답이 안 온 곳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했다.
여기서 막히나 하는 생각보다는, 아직 쓸 수 있는 카드가 남았으니까.
기관에 직접 전화하다
남은 회신을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하기는 답답했다.
그래서 첫 회신을 받고 나흘 뒤, 점심시간에 기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봤다.
기관 담당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드렸다.
"아버지를 찾고 있어서"
"아버지가 직업군인"
나의 상황을 담당자가 듣고는 살짝 당황한듯 헛기침을 했다.
이후 담당자는 무심건조한 말투에서 웬지 신경써주는 듯한 말투로 변한듯 느겨졌다.
(왠지 내 상황에 도움을 주고싶다는 마음이 느껴져서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담당자는 "우리 기관에는 찾으시는 정보가 없고, OOO 기관에 기록이 남아 있을 것" 이라고 힌트를 알려 주셨다.
통화하면서 아버지를 좁혀 찾을 만한 단서도 몇 가지 들을 수 있었다.
이 통화를 통해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이 문서상에서 확실한 보인다는 것이였다"
전화를 끊고 바로 변호사님께 전화를 했다.
"OO 기관 담당자가 이러이러한 단서를 줬습니다."
"단서를 보완해서 재신청을 하는게 어떨까요?"
변호사는 이번 전화를 통해 중요한 단서를 얻은 것 같다고 했다.
그 것은 문서제출명령을 어느 기관에 신청하면 될지 명확한 기관명을 알게되었고,
그 기관명을 통해 아버지가 육군인지, 해군인지 등 명확한 소속을 알 수있게 되었다고.
확실하게 범위가 좁혀졌으니 기관측에서도 개인 특정을 하기 쉬워질 것 같다고 했다.
그날 저녁, 단서를 넣은 사실조회 신청서를 재접수했다.
신청서 끝에는 이런 문장도 넣었다.
"만약 일체의 정보 회신이 불가능하다면, 과거 주소 등 회신 가능한 정보만이라도 회신 요청드립니다."
"전부 안 됨'이라는 답만 주지말고, 어떠한 정보라도 제발 주세요. 라는 절실함이 담긴 요청이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이때 용기를 내서 기관에 전화를 걸어본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3화에서 확인서 초안을 직접 쓰고 일본에 다녀온 것처럼, 아버지에 대한 단서는 결국 나와 어머니가 갖고 있다.
절차는 변호사님이 맡아 주셔도, 자료는 내가 먼저 움직여야 나왔다.
마지막 기회: 문서제출명령 신청
그리고 한 달 뒤..
단서를 넣어 보낸 곳에서 답이 왔다.
"(아버지 이름)이라는 사람은 확인이 가능하나, … 요청자료 제공이 불가함."
기록이 있는 건 맞는데, 개인정보라서 알려 줄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답답한 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적어도 아버지 기록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게 됐으니까.
일주일쯤 뒤, 변호사님한테서 메일이 왔다.
"오늘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였습니다. 제출본을 첨부와 같이 보내드립니다. 한번 기다려보시지요."
사실조회로는 더 받을 게 없으니, 이번에는 기록이 있다고 답한 그 기관을 집어서 문서를 내라고 법원에 명령을 신청한 것이다.

사실조회가 '알려 달라'는 부탁이라면,
문서제출명령은 '문서를 내라'는 명령이다.
요청한 건 아버지 복무 기록 중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가 적힌 부분이었다.
364명 중에 아버지를 찾다
한 달쯤 지나 회신이 왔다.
회신서에는 아버지를 찾아 좁혀 간 과정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364명.
그중 나이가 맞는 사람이 8명, 그중 직업군인이었던 사람이 2명.
근무한 시기와 부대까지 맞는 사람은 1명이었다.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 아버지가 맞을 거라는 사실을 나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문서에는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와 전역 당시 주소가 적혀있었다.

이름으로만 알던 아버지의 인적사항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정말 '실재한다는게' 체감이 되었기 떄문이다.
가장 큰 산인 신원 특정이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겠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아버지는 살아 계셨다
회신서에 적힌 주소는 30년도 더 된 전역 당시 주소였다.
지금 사시는 곳을 알려면 주민등록초본이 필요했다.
주민등록번호를 알게 됐고 법원에서 주소를 보정하라는 명령도 나와서,
변호사님이 직접 아버지의 초본을 떼보겠다고 하셨다.
초본을 떼기 전에 변호사님께 먼저 물어본 게 있다.
"혹시 주민등록초본을 떼러 갈 때 피고의 사망여부도 함께 알 수 있으려나요?"
어디 사시는지보다, 살아 계신지가 먼저 궁금했다.
40분쯤 뒤, 사무실에서 초본을 보내 주셨다.
아버지는 살아 계셨다. 지금 사시는 주소도 적혀 있었다.
"서울시 OO구 OO동 OO아파트 101동 301호"
소장을 낸 지 석 달 반 만에, 주소불명이던 칸을 채울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살고 계셨던거구나.. 일이 잘 풀려 기쁨과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몰아쳤다.
저 곳에 가면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이제 법원은 이 주소로 아버지에게 소장을 보낸다.
30년 만에 아들이 보낸 소장을 받으면, 아버지는 어떤 답을 하실까?
다음 글에서는 소장을 보낸 뒤의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