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청구 후기] 소송은 기다림이다 - 소장 송달, 답변서 제출, 변론기일지정 (5)

4개월의 기다림 끝에 법원으로 아버지를 소환하기

소장이 아버지에게 도착하다

지난 글에서 30년 넘게 이름만 알고 살았던 아버지의 주소를 마침내 찾아냈다.
이제는 법원이 그 주소로 소장을 보냈다.

소장을 받는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놀라실까? 당황하실까?
30년 전 어머니와 절연하라고 난리를 치던, 그쪽 가족들이 소장을 대신 받진 않았을까?

온갖 상상이 머리를 스치지만, 잠시 잊고 현재 삶에 집중하기..는 개뿔
하루에도 여러번 '나의사건검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5일 후...

나의사건검색 소장송달 조회 화면

드디어 법원이 보낸 소장이 아버지에게 도착(송달)했다.

피고 김OO에게 소장 부본이 송달되었다고한다.

누가 받았을까, 눌러보니 동거인 김OO (아버지와는 다른 이름)이 수령했다고 한다.

김OO..? 누구지? 와이프분은 아닐텐데..

"설마..."


소송은 기다림이다

소장 접수 후 아버지에게 소장이 도달되기까지 4개월 정도가 소요된 듯하다.

법원으로부터 소장을 받은 사람(피고)은 원칙적으로 30일 이내에 '답변서'라는 것을 제출해야 한다.답변서에는 아래와 같이 소장 내용을 인정하는지, 인정하지 않는지 입장을 적는다고 한다.

  • "원고의 주장이 맞다 (내 아들이 맞다)"
  • "나는 모르는 일이다 (친자가 아니다)"
  • "정확한 확인을 위해 유전자 검사를 해 보자"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30년 만에 아들이 보낸 소장에 대해 아버지의 첫 대답이 돌아오는 것이다.

솔직히 이때부터는 이미 판은 벌려진 것이니, 크게 감정이 요동치지는 않았다.
그저 답변을 빨리 회신해주기를 바랄 뿐.

그런데 소장 도달 후,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무슨일이 있으신걸까?"
"너무 당황해서 답변도 못하고 계신걸까?"

아.. 모르겠다. 더 이상 나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인내심의 한계' 1박2일 짤

참다못해 변호사님께 먼저 카톡을 보냈다.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피고 측에서 답변서 회신이 없는 것 같은데.
만약 계속 없으면 어떻게 절차가 이뤄질까요?"

카톡을 보내고 몇 분 뒤, 변호사님한테서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변호사님의 설명은 이랬다.

  • 소장을 송달받고 한 달 안에 답변을 해야 하는데, 기한이 이번 달 중순쯤이니 며칠 내로 나올 수도 있다.
  • 주소가 틀려서 아예 못 받은 거면 '공시송달'로 넘어가겠지만, 지금은 분명히 소장을 받고도 답을 안 하고 있는 상태다.
  • 만약 끝까지 답변서가 안 나오면 우리 쪽에서 '변론기일 지정 신청'을 해서 재판을 열어야 한다.


소장을 못 받은 게 아니라,
분명히 읽고도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통화하는 김에 그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궁금증들을 하나씩 여쭤봤다.


"유전자 검사는 해야하는 걸까요?"

"그거는 상대방이 답변서를 내고 재판이 열리면 진행하는 게 원칙이에요.
이대로 그냥 친자임을 인정할 가능성은.. 보통 없거든요."

"혹시 끝까지 답이 없어서 무변론 판결이 나면, 유전자 검사 없이 끝나는 건가요?"

"근데 이런 인지청구 사건에서 피고가 끝까지 답변이 아예 없는 경우는 제가 아직까지 못 봤거든요.
분명히 무슨 답이든 나올 겁니다."


그리고 사실 내심 제일 궁금했던 걸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변론기일이 잡히면 법정에 제가 직접 가야 하나요?"

걱정되는 마음 에비츄 이미지
걱정되는 마음

얼굴을 대면하는게 왠지 두려웠다. 한 번 얼굴을 봐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냥 두려웠다. 어쨋든 누군가가 등떠밀어서 가고싶었다.
내가 먼저 나서서 얼굴을 보러갈 용기는 없었다.

"안 오셔도 됩니다. 제가 알아서 다 진행하고요, 원하시면 오셔도 됩니다."

"만약에 그쪽에서 당사자(아버지)가 직접 나오면.. 아버지 얼굴은 그때 볼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네, 얼굴 보러 가고 싶으실 수 있으니까 저랑 같이 가셔도 되고요.
그건 선택에 따라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평생 사진 한 장조차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얼굴.
법정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라도 그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일단 답변서 제출 기한까지는 며칠 남았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통화를 마쳤다.


기다림의 끝은 '기일지정신청'

기한이 지났다.
답변서는 오지 않았다.

혹시나 늦게라도 제출하지 않을까 싶어 2주를 더 기다렸다.
소장이 아버지에게 도착한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변호사님도 이런 사건에서 답이 아예 없는 경우는 못 보셨다는데, 대체 왜 이러지..?"

더 이상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아침 일찍 변호사님께 다시 카톡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시간 되실 때 연락 부탁드립니다"

변호사님은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으니 변론기일지정 신청을 제출하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게 하자고 했다.
(빨리하라고 빨리빨리...!!)

'빨리빨리' 무한도전 짤

그리고 그날 점심시간 무렵,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법원에 '변론기일지정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안내였다.

변론기일지정 신청서

신청서에는 그동안의 경과가 담담한 법률 용어로 적혀 있었다.

"원고는 귀원에 소장을 접수하였습니다. 원고는 사실조회 신청 및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통해 피고의 인적사항을 특정하였습니다. 위 소장 부본은 피고에게 도달하였습니다. 그 후 피고는 약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원고는 변론기일을 지정하여 주실 것을 신청합니다."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류에 적힌 이 한 문장이 유독 눈에 밟혔다.


소장을 받은 건 확실한데, 아버지는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 어떤 변명도,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택한 것이다.


법원이 아버지를 소환하다

변호사님은 통화로 "가정법원은 재판이 많아서 기일이 잡히는 데도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셨다.

이번에도 한 달은 족히 걸리겠구나 싶어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3시 반쯤, 메일이 한 통 더 왔다.

어? 이번엔 엄청 빠르네..ㄷㄷ

"변론기일이 아래와 같이 지정되었습니다."

신청서를 낸 지 세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재판 날짜가 잡힌 것이다.
(법원 일 처리가 이렇게 빠를 수도 있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함께 첨부된 '변론기일소환장'을 열어 보았다.

일시: 8월 OO일 오전 OO시 OO분, 서울가정법원 제OOO호 법정

변론기일소환장
무시무시한 말이 적혀있는 '변론기일소환장'

소환장에는 꽤나 단호하고 무서운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 "만일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결정으로 500,000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구인할 수 있습니다."
  • "소송대리인이 선임되어 있더라도 이 소환장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출석할 의무가 있습니다."
  • "소송대리인은 소송촉진 및 실체관계 확인을 위하여 가능한 한 당사자 본인과 함께 출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소장을 받고도 두 달 내내 묵묵부답이던 아버지에게,
이번에는 법원이 직접 "법정으로 나오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드디어 날짜가 정해졌다.

두 달 동안 침묵하던 아버지는 법원의 소환장을 받고 어떤 선택을 하실까?
그날 법정에 아버지가 직접 걸어 들어오실까?
그렇다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게 되는 걸까?

다음 글에서는 대망의 첫 변론기일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한다.


타임라인 요약

지금까지의 소장 접수부터 첫 변론기일까지의 타임라인을 아래와 같이 요약 정리해 보았다.
내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니, 참고 정도로 활용해주시기 바라며.

소장을 보내 놓고 상대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소장 접수부터 첫 변론기일까지 (총 217일 소요)
단계진행 내용소요일
1소장 접수-
2사실조회 (6개 기관) - 인정사항 특정 실패56일
3문서제출명령 신청13일
4문서제출명령 승인7일
5기관에 명령 송달4일
6문서제출명령 회신 도착 - 인적사항 특정 성공15일
7피고 표시 정정 신청2일
8법원의 보정명령12일
9소장 발송 (주소 보정 포함)2일
10소장 송달5일
11답변서 기한(30일) - 회신 없음30일
12기일지정 신청21일
13변론기일 지정 · 소환장 발송당일
14첫 변론기일50일

참고로 상대가 소장을 받지 않거나,
받고도 답변이 없을 때에는 상황에 따라 절차가 달라지니 참고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