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청구 후기] 아버지와 첫 대면, 유전자검사 (6)

드라마 같은 내 인생에 대한 덤덤한 나의 이야기

지난 화에서 소송에 대한 답변이 없는 아버지에게
법원이 '변론기일소환장'을 보냈다.

소환장까지 받았으니 이번엔 정말 나오실까?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 얼굴을 보게 되는 건가,
복잡한 마음으로 재판 날을 기다렸다.


법정에 가지 못한 나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법정에 가지 않았다.

변호사님이 굳이 안 와도 된다고 하신 것도 있었지만,
솔직히는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안 났다.

30년 넘게 사진 한 장 본 적 없는 사람을
법정에서 마주한다니 두려움이 앞섰다.

문 열고 들어갔는데 저쪽에 앉아 계시면?
나를 쳐다보시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지?
인사는 해야 하나, 모르는 척 앉아 있어야 하나.

전날 밤까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수십 번을 돌리다
결국 '안 간다'로 결론을 내렸다.
변호사님이 안 와도 된다고 했으니까,
라며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고양이 짤
자신이 없오...

재판은 오전이었다.

안 간 대신 일하는 내내 모니터는 눈에 안 들어오고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지금쯤 시작했겠지? 나오셨을까?
혹시 모르는 애라고 하시는 건 아닐까.'

일하다가 핸드폰을 계속 확인했다.
카톡이라도 온 것이 있을까?..

"없네.."
"휴..."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조금 후회가 되었다.

"그냥 출석할걸 그랬나..ㅠㅠ"


나에게 '형' 이 있었다

점심시간쯤 변호사님에게 카톡이 왔다.
명함 사진 2장이랑 같이.

변호사가 보낸 카톡 일러스트
변호사가 보낸 의문의 명함

"OOO님 명함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장은 유전자검사회사 명함입니다.
참고용이고 다른 기관 통해서 하셔도 됩니다."

명함? 누구 명함이지?


궁금해할 틈도 없이 바로 변호사님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재판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재판은 짧았다고 했다.

판사님이 먼저 피고 쪽을 보고 물으셨다고 한다.

"피고 본인은 왜 출석하지 않으셨나요?"

그러자 피고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병세가 많이 악화되셔서 지금 요양원에 계십니다.
거동이 어려우셔서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판사님은 잠시 서류를 보시더니 이렇게 정리하셨다고 했다.


"그러면 유전자 검사는 피고가 계신 곳으로 직접 가서 해야겠네요."

"원고와 피고, 그리고 출석하신 분까지 세 분 모두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도록 하세요."

재판이 끝나고,
그 사람이 변호사님께 명함을 건넸다고 했다.
검사 일정은 이쪽으로 연락 달라고.

법정에 나온 건 아버지가 아니라 장남,
나에게는 이복형이었다.


유전자감정을 신청하다

지난 글에서 소장을 대신 받았던 '동거인 김OO'.
혹시나 했던 그 사람이 아버지의 큰아들이었다.

아버지를 찾다가 형까지 생겨버린 거다.
(이게 무슨 아침드라마인가 싶었다)

명함을 확대해 봤는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이었다.

'좋은 회사 다니시는구나..'

이 와중에 그게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나도 참 웃겼지만,
한편으론 조금 안심이 됐다.
적어도 깽판(?)을 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 단어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요양원'

80세 가까운 나이에 요양원에 계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혹시.. 내가 너무 늦게 찾은 걸까.

변호사님은 재판 전날 미리 '유전자감정 신청서'를 제출해 두셨다고 했다.

세 사람(나, 장남, 아버지)이 모두 모여 검사를 받게 된 것이다.

유전자감정 신청서
법원에 제출한 유전자감정 신청서

아버지가 고령에 중증 치매라 검사가 제대로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
아버지와 나뿐 아니라 장남까지 넣어 서로 맞춰 보게 한 것이었다.


찾아보니 검사는 각각 확인하는 것이 달랐다.

유전자 검사로 확인하는 것
검사확인하는 것
아버지 - 나아버지의 친자 확인 (핵심)
아버지 - 장남채취한 시료가 아버지 것이 맞는지 확인 (장남은 이미 등록된 아들)
장남 - 나나와 장남이 같은 아버지 쪽 핏줄인지 확인 (Y염색체 검사)

Y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만 그대로 내려간다.

그래서 아버지 시료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아들끼리 Y염색체가 같으면 같은 아버지 쪽 핏줄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법정에서 마주칠 용기가 안 나서 피했더니,
결국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내가 직접 찾아가야 하는 판이 됐다.

판사님이 아주 제대로 등을 떠밀어 주신 셈이다.


어색한 통화

명함에 적힌 번호로 문자를 보내려고
창을 한참 띄워 뒀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해야 하나,
'처음 뵙겠습니다'로 해야 하나.

'형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OOO님'이라고 해야 하나....

엎드려서 폰 보는 페페 일러스트
어떡하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최대한 정중하게 용건만 보내고 통화를 했다.

처음 통화해보는 이복형.

날 선 반응이 나오면 어쩌나 긴장했다.

"여보세요?"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하고 덤덤했다.
통화는 마치 거래처와 미팅 일정 잡는 업무 전화 같았다.

언제, 어디서, 몇 시에 모이고 검사는 어떻게 할 건지
감정 하나 없이 절차만 주고받았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처음 형제와 나눈 대화가 일정 조율이라니 기분이 참 묘했다.

날짜가 잡히고 나니 실감이 났다.


혼자 그곳에 갈 생각을 하니 도저히 발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아서
여자친구에게 부탁해 같이 가기로 했다.

옆에 내 편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그래도 덜 떨릴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향한 요양원

약속 당일, 여자친구와 함께 요양원으로 향했다.

출발 전에 지도앱으로 요양원 위치부터 찍어 봤다.
"경기도 OO시"

수도권이긴 한데, 지도를 확대할수록 건물보다 산과 논이 더 많이 보였다.
'이런 곳에 계셨구나..'

가는 내내 차 안은 조용했다.
마치 거사를 치르러 가는 사람들처럼, 여자친구도 나도 별말이 없었다.
라디오 소리만 작게 흘러나왔다.

가끔 여자친구가 "괜찮아?" 하고 물으면, 나는 "응, 괜찮아" 하고 대답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큰길을 벗어나 좁은 길로 한참을 들어가자, 조용한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요양원 일러스트
물 좋고 공기 좋아보이는 곳의 요양원


도착했다고 전화를 걸자,
잠시 뒤 요양원 건물 밖으로 장남이라는 사람이 마중을 나왔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병실 층으로 올라갔다.


아버지와의 첫 대면, 유전자검사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치매병동'이라는 글씨가 눈에 박혔다.
연세가 많으신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잠시 후 병실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나오셨다.

휠체어에 앉아 계셨고,
입에는 호스를 낀 상태였다.


거동조차 힘든 중증 치매 환자셨다.

요양원 병실 일러스트
젊은 사람들이 단체로 찾아와서, 어르신들의 시선을 받았던 병실

내가 30년 동안 머릿속으로 그려 온 아버지는 군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였는데,
휠체어 위에서 작게 웅크리고 계셨다.

장남이 휠체어 옆에서 말을 걸었다.

"아버지, OO이 기억하세요? 아버지 아들이에요."

나도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 OO이에요. 저 기억하세요?"


아버지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보시더니
"어어.. 으으.." 하는 신음 같은 소리만 내셨다.

나를 알아보신 건지, 그냥 낯선 사람이 와서 놀라신 건지.
그 소리의 뜻은 평생 모를 것 같다.

그 순간 아버지 얼굴을 뜯어보듯 오래 들여다봤다.
내 평생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친아버지 얼굴.


눈, 코, 입, 귀를 하나씩 보며 나랑 닮은 곳을 찾으려 했는데,
너무 야위셔서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조차 헷갈렸다.

옆에 서 있는 장남을 힐끔 봤을 때도
묘한 느낌은 있었지만 엄청 닮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나중에 여자친구는 꽤 닮아 보였다고 했다)


잠시 후 동행한 검사업체 직원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채취를 시작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나,
그리고 장남까지 세 사람 모두 머리카락을 뽑아야 했다.

모근이 필요하다며 여러번에 걸쳐서 꽤 많은 양을 확 뽑아갔는데..

좀 아팠다.

유전자검사 머리카락 채취 상황 일러스트
드라마에서나 들어봤던 '머리카락 검사'

무거웠던 분위기가 머리카락 뜯기는 통증에 잠깐 깰 정도였다.

'아니, 이렇게 많이 뽑아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삼켰다.

채취가 끝나고, 아버지는 곧바로 안정을 취하셔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병실로 돌아가시는 아버지께

"아버지 저도.. 이만 갈께요.."


"그럼.. 건강하세요."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내가 궁금하지는 않으셨냐고
왜 한 번도 찾아오지를 않으셨냐고

30년 치 질문들이 목 끝까지 찼지만

지금의 아버지에겐 물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이 내가 보는 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습'이겠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요양원 복도 일러스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나고 떠나는 길

밖으로 나오니 장남이 먼저 말을 걸었다.
"커피나 한잔하실래요?"

30년 만에 처음 만난 형과 마주 앉는 자리.


그 자리에서 나는 아버지에 대해,
그리고 형이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이복형과 나눈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한다.

[인지청구 후기] 친자확률 99.9999% (7)

요양원에서의 유전자검사 이후, 처음 만난 '이복 형제'와의 대화. 형이 들려준 아버지는 내가 상상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인지청구 소송 실화 기록을 정리했다.

일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