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청구 후기] 친자확률 99.9999% (7)

처음 만난 형의 이야기, 그리고 기다림 끝에 받아 든 숫자


아버지의 진짜 모습

지난 글에서 요양원에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고,
유전자 검사를 위해 머리카락을 뽑았다.

검사가 끝나고 나오는 길,
형님이 커피 한잔하자고 했다.

요양원 근처에 작은 카페가 하나 있었다.
형님이 앞서 걷고, 나와 여자친구가 몇 걸음 뒤에서 따라갔다.

고작 몇 분 거리였는데,
그 길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카페에 들어가자 형님이 자연스럽게 먼저 나서서 커피를 결제했다.

창가 자리에 셋이 앉았다.
형님은 맞은편, 여자친구는 내 옆.

커피가 나올 때까지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괜히 컵 받침만 만지작거렸다.

어색한 상황을 묘사하는 사진
어색하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형님이 먼저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는 옛날부터 꽤 난폭하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마음고생하다 일찍 돌아가셨고,
형제들도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며 살았다고.

지금은 장남이라는 의무감 하나로
한 달에 한 번 요양원에 들르고 병원비도 혼자 내고 있다고 했다.

형님이 말하는 아버지는 내가 알던 아버지와 전혀 달랐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들은 이름 석 자,
그리고 '직업군인'이라는 네 글자가 전부였다.

그 짧은 단어로 30년 동안 머릿속에 아버지를 그려왔다.
군복을 입은, 조금 무뚝뚝하지만 듬직한 사람.

그런데 형님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는
가족을 힘들게 했고, 자식들에게 평생 원망을 산 사람이었다.

내가 혼자 그려온 아버지라는 환상이 한 장씩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서운한 건지, 차라리 다행인 건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듣는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창밖을 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 문득 떠올랐다.

행복한 집은 다 비슷비슷한데,
불행한 집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던가.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30년 동안 아버지가 없어서 몰랐고,
이 사람은 아버지가 있어서 평생 힘들었다.

같은 아버지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이유로 아팠다.

누가 더 나았던 걸까.


세상은 좁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형님이 IT 개발자라는 걸 알게 됐다.
나랑 같은 IT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였다.

더 놀라운 건 형님이 일하던 곳이었다.


내가 프로젝트로 자주 드나들던 고객사 건물


층만 다르고 같은 건물이었다.

그 건물이라면 나도 너무 잘 알았다.
출입증을 찍고 들어가던 1층 로비,
점심시간마다 줄을 서던 엘리베이터.


그사이에 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순간 소름이 돋았다.

'우리 서로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쳤을 수 도 있었겠네요..'

고양이가 놀라는 모습의 사진
어... 어... 네...

물론 그때는 서로 존재도 몰랐으니 마주쳤어도 그냥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30년을 남으로 산 형제가, 같은 건물 몇 층 차이로 일하고 있었다니.


세상 참 좁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형님은 대화 내내 차분했다.
필요한 말만 딱딱 정리해서 하는 인텔리 느낌.

그러면서 한편으론 아버지 수중에 남은 돈이나 재산이 거의 없다는 걸
은근히 알리는 느낌도 들었다.

나한테 들으라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바로 본론을 꺼냈다.
나중에 서류로 날아가는 것보단, 얼굴 보고 미리 말하는 게 맞다 싶었다.

"인지청구 소송 끝나면 저희 어머니께서도 아마..
과거 양육비에 대해서 청구하실 것 같습니다. "

"그 부분은 미리 알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말을 꺼내 놓고 속으로 꽤 긴장했다.
혹시라도 안색이라도 안좋아지면 어쩌나, 언쟁이 오가면 어쩌나.

형님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건 당연히 감수해야죠. "
"저도 이해는합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 부탁하자면, 아버지 병원비 정도는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

일단은....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나도 알겠다고 했다.


심란한 마음

카페를 나와 주차장 앞에서 인사를 나눴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들어가세요."

악수를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만 꾸벅 숙였다.

차에 타서 휴대폰을 열었다.
문자를 주고받을 때 'OOO'으로 저장해 둔 번호.

'형님'으로 바꿔야 하나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냥 그대로 두었다.
아직은 그 한 글자가 손에 붙지 않았다.

출발하면서 룸미러로 요양원 건물을 한 번 더 봤다.
저 안 어딘가에 아버지가 계셨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자친구가 물었다.
"어땠어?"

고민되는 상황을 표현하는 일러스트
모르겠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 조금 혼란스럽네.. 아직 잘 모르겠어."


정말 몰랐다.
슬픈 것도 아니고 후련한 것도 아니고,
30년 동안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 돌렸던 순간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채취한 세 사람의 머리카락은 유전자 분석실로 넘어갔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딱 일주일.

요양원에서 멍하니 마주했던,
아버지의 야위였던 모습
나와 닮은 구석이라곤 찾기 힘들었던 흐릿한 이목구비.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만약… 유전자 검사 결과가 불일치로 나오면 어쩌지?'

그 일주일은 이상하게 길었다.

어느 날은 지난 서류들을 모두 정리하다가
법원에 제출했던 가족관계증명서를 다시 꺼내 봤다.

'부'의 란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이 칸이 정말 채워질 수 있을까.


유전자 검사 결과

그리고 마침내 일주일 뒤,
휴대폰에 문자 하나가 떴다.

'고객님께 등기우편물이 배달될 예정입니다.'

등기..?
요즘 나한테 등기로 올 게 있었나.

잠깐 갸웃하다가, 그 것이 떠올랐다.

'아.. 그거구나.'

그날 받아 든 건 'OOO바이오' 라는 회사 로고가 찍힌 각대 봉투였


바로 뜯을 수가 없어서,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전자담배를 한대 물었다.

봉투 끝을 조심스럽게 뜯었다.

'유전자 시험성적서'는 총 3부(12페이지)였다.

  1. 아버지 - 나
  2. 아버지 - 장남
  3. 장남 - 나

떨리는 손으로 가장 먼저 '아버지 - 나'의 성적서를 넘겼다.

유전자 시험성적서
유전자 시험성적서

감정결과: 피감정인들은 성염색체를 제외한 공동의 STR 유전자 좌위가 모두 일치하여 친생자 관계가 성립되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수점 아래로 9가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
이런 숫자는 처음 봤다.

99.9999999879491%

"..맞구나."

단지 이름과 직업군인이었다는 옛 기억 하나로 시작했던 추적이,
과학적이고 법적인 숫자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기쁘다기보다는 '이제 됐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어머니 말이 맞았고, 내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어머니였다.


30년 전 어머니가 나에게 말해 준 이름과,
어머니의 기억은 진실이었다.

그날 밤, 결과지 12장을 한 장씩 스캔해서 변호사님께 메일로 보냈다.

이후 유전자 검사기관 측에서도 법원에 성적서를 제출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정말 최종 판결만 남았다.
과학적인 증거는 완벽하게 나왔다.

법원은 판결을 언제 내주는걸까?
빨리 좀 끝내고 싶다.

빨리빨리의 민족치고는, 법원의 시계는 참 천천히 가는 것 같다.
소장을 낸 게 1월이었는데, 어느새 가을이었다.

판결이 나오면, 정말 끝일까?

그리고 그 판결이 확정되면,
30년 동안 비어 있던 내 가족관계증명서의 '부' 칸은 마침내 채워질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길고 길었던 인지청구 소송의 마지막,
최종 판결문을 받아 든 날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