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청구 후기] 최종 판결 - 나에게 아버지가 생겼다 (8)

나도 이제 아빠 있어..!

지난 글에서 친자임이 확실하다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았다.

이번 글은 인지청구 소송의 마지막 이야기,
최종 판결 및 가족관계등록 정정을 진행한 이야기다.

최종 판결

유전자검사 결과지가 법원에 제출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최종 판결 뿐.
조급하지 않았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거니까.

유전자 검사를 제출한 다음 한달 정도가 지났다.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판결정본 송부]라는 제목의 메일이 도착했다.

판결정본..
드디어 왔구나.

올해 초 겨울에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는데,
가을이 끝날 무렵에 판결문을 받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첨부된 PDF 파일을 열었다.


인지청구 판결문

주 문
1. 원고는 피고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
2.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

이 유
원고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부(父)란이 공란으로 되어 있는 사실,
유전자 검사에서 원고와 피고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성립한다는 결과가 나온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피고의 친생자임이 분명하다.

생각보다 짧았다.
판결문 이유는 고작 몇 줄이었다.

수개월 동안 사실조회를 돌리고, 문서제출명령을 내고, 소장을 보내고,
요양원까지 찾아갔던 모든 과정이 판결문에는 단 몇 줄로 압축되어 있었다.

'이 짧고 간결한 판결을 받으려고 9개월을 달려왔구나.'

이 짧은 문장 하나에 30년이 들어 있었다.

"원고는 피고의 친생자임이 분명하다."

분명하다.
30년 동안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던 걸,

법원이 단 세 글자로 말해 주었다.

피고 측에서도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소장을 접수한 지 약 9개월 만의 일이었다.


가족관계등록부 정정하기

판결이 났으니 이제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법원 판결이 났다고 해서 가족관계증명서가 자동으로 바뀌는 건 아니라고 한다.

판결문 정본과 확정증명원을 들고 시군구청에 가서 직접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인지 신고)'을 해야 한다.

우편으로 판결문 원본을 받은 뒤, 시간을 내어 시청 민원실을 찾았다.
시청에는 민원을 보러 온 사람이 많았다.

어..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여권민원팀'으로 가야한다던데.. 어딨지
저기 사람이 별로 없는 창구가 보였다.

접수처 이름을 올려다 보았다.
'민원과 여권민원팀'

여기구나.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세요'

안내문 대로 번호표를 뽑았다.

기다리는 동안,
손에 든 판결문 봉투를 몇 번이나 만지작거렸다.

시청 민원실에서 대기 번호를 기다리는 상황의 일러스트

'띵동- 127번 민원인분 이쪽으로 오세요-'
'안녕하세요,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하고 싶은데요'

'판결문은 가져오셨나요?'
당당자는 어떤 업무인지 단번에 알고 있는듯 했다.

'네 여기있습니다'

서류를 건네받은 담당자님이 모니터를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나에게 물으셨다.

"선생님, 그동안 본관이 청주 김씨로 되어 있으셨는데,
아버님이 '경주 김씨'시네요? 본관도 아버님 따라 함께 정정해야겠네요."

"네..? 아.. 그런가요?"

30년 넘게 나는 내가 '청주 김씨'인 줄만 알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경주 김씨'였다.

30년 동안 너는 무슨 김씨야? 라는 질문에
'청주 김씨'를 사칭하고 다닌 놈(?)이 됐다

이제부터는 경주 김씨로 살아가야한다.
아버지를 찾고 나서야 내 본관까지 새로 알게 되다니,
웃프면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정정 신고는 접수되었구요, 전산에 반영하기 까지 시간이 좀 걸릴거에요."
"일주일 정도 기다리시면 될거에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청을 떠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얼마 뒤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던 중,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나는 이상하게 그 진동이, 무엇때문에 울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신고 내용이 처리되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

'접수하신 가족관계 신고가 완료되었습니다'

곧바로 가족관계등록시스템 사이트에 접속해 서류를 떼 보았다.

가족관계등록부가 정정 이후의 부가 채워진 사진

평생 공란으로 비어 있던 가족관계증명서의 '부(父)'의 란.
그 자리에 마침내 아버지의 이름 석 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나도 이제 가족관계증명서상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생겼다.

그 화면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처음으로 '아, 이제 진짜 끝났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거나 감정이 격해질 줄 알았는데,
막상 마주한 감정은 놀라울 만큼 덤덤했다.

일이 잘 끝났구나, 하는 실감에 가까웠다.

어쩌면 감정은 이미 요양원에서 다 쓰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휠체어 위의 아버지를 봤던 그날,
이 빈칸이 채워진다고 해서 무언가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아 버렸으니까.

그래도.
빈칸이 아닌 서류를 손에 쥐는 건,

생각보다 괜찮은 기분이었다.


인지청구를 마치며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찾겠다고 마음먹은 날부터,
가족관계증명서의 빈칸이 채워지기까지.

돌아보면 길기도 했고, 생각보다 빠르기도 했다.

혹시 지금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있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냈다고 해서 모든 걸 알아서 해 주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직업, 지역 같은 작은 단서도 정리해서 먼저 상의하고,
필요한 자료는 내가 먼저 나서서 준비하는 게 중요했다.

기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단서를 하나 더 얻어 낸 것처럼.

이건 나를 위한 일이고, 변호사는 그걸 도와주시는 분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참 좋은 변호사를 만난 것 같다.
내가 아버지 단서가 있을 때마다 여러번 연락하거나,
중간 중간 법원의 행정 처리가 늦거나 할 때,
항상 밝은 목소리로 질문에 답해주시고, 적극적으로 같이 전략을 고민해주셨기 때문이다.

도중에 일이 잘 안풀릴 때에는,
동료 경험있는 변호사들에게 조언을 구하시기도 해주셨던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친부 찾기 스토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지판결이 확정되고 한달 정도가 지났을 때
변호사님으로부터 새로운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변호사가 보낸 과거양육비청구 심판청구서가 첨부된 메일
다시 시작되는 재판

'과거양육비청구 심판청구서(안) 송부'

요양원 앞 카페에서 형에게 미리 말해 두었던 바로 그 이야기.

이번에는 내 소송이 아니라,
30년 동안 홀로 나를 키워내신 어머니의 '과거양육비 청구 소송'이었다.

그리고 이 소송은.. 인지청구보다 훨씬 길고 험난했다.


과거양육비 청구 소송 이야기는 새 연재로 이어서 써 보려고 한다.